[청춘만찬] "연봉에 주눅들지 마라. 경쟁보다 나다운 걸 찾아야"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세계 1위 인천공항을 브랜딩한 최장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무한 경쟁 시대에는 마케팅만으로 기업과 상품을 차별화할 수 없다. 이에 마케팅의 한계를 극복하고 무형의 가치를 부각시켜 소비자를 끌어당기는 ‘브랜드’가 주목받고 있다. 최장순 엘레멘트컴퍼니 대표는 인천공항, 구찌, CJ 등 국내 유수 기업들을 브랜딩 하며 많은 성공사례를 남겼다.
대학에서 언어학을 전공한 그는 “언어학과에 다닌다”라고 하면 “어느 학과?”라고 되묻는 이들이 많았다고 회상했다. ‘언어’를 ‘어느(which)’로 알아듣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기호학과 철학을 공부한 게 아까워 전공을 살려야겠다는 생각에 언어학 전공자를 뽑는 곳만 찾아다녔다.
1년간 신문기자로 일하다가 브랜드컨설팅 회사로 자리를 옮겨 네이미스트로 일했다. 이후 브랜드 전략, 디자인, 인테리어, 커뮤니케이션, 브랜드 매니지먼트 등 다양한 업무를 맡고 수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에 올랐다. 자타가 공인하는 ‘워커홀릭’이었던 탓에 공황장애를 겪기도 했지만 여전히 일하는 게 즐겁다고 말한다.
그는 ‘공동체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해 더 멋진 기획자들이 많아져야 한다고 믿는다. 공익 브랜드 커뮤니티 ‘매아리(매일 부르고 싶은 아름다운 이름)’를 기획하고, 디자이너, 전략가, 네이머, 철학자를 한데 모아 브랜드를 연구하고 고민하는 연구 공동체 엘레멘트컴퍼니를 설립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학창시절 어떤 학생이었나.
“고등학교 때까지 모범생이었다. 너무 가난해서 공부 외에 다른 길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원래 서울대 종교학과에 진학하고 싶었는데, 떨어졌다. 비슷한 과를 찾다 보니 인류학과 언어학이 있었다. 성적에 맞춰 언어학과에 진학했는데 정말 재밌게 공부했다. 교과서에서 배우던 지식들의 잘못된 점도 배우고 노동에 대한 관점들, 어떤 포지션을 취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해석할 수 있고 다른 프레임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1학년 때 알게 됐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
“학창시절엔 사회과학학회와 인문고전강독학회 활동만 했다. 학회에서 번역되지 않은 원서를 읽고 토론했다. 어떤 날은 뒤풀이에서 새벽 4시까지 술을 마시면서 계속 토론했다. 예를 들면 존재, 존재자에 대한 개념의 차이와 쓰임새에 대해 형들이 가르쳐 주면 테이블 아래 수첩을 두고 필기하면서 술을 마셨다. 당시에는 실용적인 공부를 하는 것을 싫어했다. 그럴 필요는 없었는데.”
▶주관이 뚜렷했던 것 같다.
“어른들이 보기에 철딱서니 없는 행동들을 많이 했다. 과외를 했으면 등록금도 어렵지 않게 벌었을 텐데 돈을 수월하게 버는 방식을 경멸했다. 편의점에서 하루 11시간 일하고 1만3000원을 받았다. 바코드도 없던 편의점이어서 가게에 있는 물건 가격을 일일이 외웠다. 당시 인기 있던 주스 가격이 3200원이었는데, 가격을 착각해 2400원에 팔았다. 희한하게 많이 팔렸다. 월급에서 다 까였다. 밤 11시부터 오전 10시까지 일하니 졸다가 도둑도 많이 맞았다. 당연히 월급에서 까였다. 그땐 어려운 길만 골라서 갔던 것 같다.”
▶신문기자로 일한 이력이 독특하다.
“취업에 대한 생각도 없었고 스펙이나 영어 성적도 없었다. 그러다가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이 돼서 3년 4개월간 공군 장교로 복무했다. 돈을 모아서 유학을 떠날 생각이었는데, 갑작스레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취업을 해야만 했다. 글쓰기는 자신 있었던 터라 신문사 취업을 생각하게 됐다. 교수신문은 학부 때부터 즐겨보던 신문이었다. 교수, 연구자들의 표절을 취재하고 표절에 대한 윤리를 만들어가는 일이었고, 작은 신문사였지만 표절 기사가 학계에 미치는 영향이 컸다. 2006년에는 KBS <추적 60분>에서 공동 작업 제의가 들어와 대한민국 교수들의 표절이라는 연구 부정행위를 함께 취재하기도 했다.”
▶이후에 기획자로 전향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전공을 살리고 싶은데 채용의 기회가 많지 않았다. 한 브랜드 전략 회사에서 언어학 전공자를 뽑는다고 해서 네이미스트로 일을 시작했다.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일이어서 좋았고, 잘할 수 있는 일이어서 계속하게 됐다. 이름을 설득하기 위해 경영학, 마케팅, 심리학도 공부했다. 시장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이름을 설득하니까 자연스럽게 브랜드 전략도 하게 됐고, 프로젝트도 맡게 됐다. 브랜드에 다양한 요소가 있다. 네이밍, 슬로건, 카피라이팅, 디자인, 인테리어 등을 하는 걸 크리에이티브라고 하는데, 이를 디렉팅하는 역할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다. 어느새 이 자리까지 오게 됐다.”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는 무엇인가.
“인천공항 내부 서비스 철학을 만드는 작업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2011년 당시 인천공항은 세계공항서비스평가(ASQ) 1위를 수년째 기록하고 있었다. 해외 여러 공항에서 인천공항의 서비스를 배우기 위해 찾아왔지만, 인천공항 스스로도 무엇이 차별화됐는지 알지 못했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서비스 정신을 태조 왕건 때부터 내려오는 설화에서 찾았다. 급하게 마시면 체할까봐 바가지 물에 버드나무 잎을 띄워놓는 것에서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 그 태도를 ‘마음씀’이라고 정의했다. 또한 이탈리아 럭셔리 브랜드 구찌의 ‘구찌 카페’ 팝업스토어 인테리어 시공을 맡은 것도 새로운 도전이었다.”
▶재능기부 활동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동료들과 함께 만든 비영리 공익 브랜드 커뮤니티인 ‘매아리’는 2009년 9월 9일에 시작됐다. 가장 최근에는 서울시 환경 캠페인 프로젝트를 진행해 NHK에 소개되기도 했다. 쓰레기 무단투기 방지를 목적으로 쓰레기 먹는 먹깨비 비닐봉지를 만들었다. 환경미화라는 계몽적인 메시지 대신 위트 있는 캐릭터를 만들어 시민들이 즐겁게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해외에서 진행한 한글 캠페인도 기억에 남는다. 데릭이라는 청년이 한글 캠페인을 도와달라고 페이스북으로 연락해 왔다. 캐나다 브리티시 콜롬비아주 정부 관할에서 한글 캠페인을 한 달간 진행한 뒤 10월 9일한글날이 그 지역 공식 기념일로 선포되는 성과를 냈다.”
▶일하면서 힘든 순간도 많았을 것 같다.
“프로젝트 강도도 세고, 완벽주의자 기질이 있어서 일을 마무리하고도 마감 전에 좋은 생각이 떠오르면 계속 수정하는 편이다. 하루 수면시간이 3시간을 넘지 않을 때가 1년 넘게 지속되니 공황장애가 왔다. 4개월 정도 일을 쉬면서 내려놓는 연습을 했다. 지금도 잠을 잘 못 잔다.”
▶기획자에게 필요한 역량은 무엇인가.
“호기심을 갖고 이것저것 기웃거리는 태도와 엉덩이가 무거워야 한다. 관심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일정한 프레임으로 정리하고 도큐멘테이션 할 수 있어야 한다. 기획을 사람들에게 알리려면 여전히 문서가 가장 좋은 방법이다. 세계에 대한 애정, 그것을 잘 기록하고 공유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기획자의 장점과 단점을 꼽는다면.
“장점은 기업에서 새로운 것을 시작할 때 남보다 빨리 알게 되는 것이다. 반면 각박하다. 일과 중에 사람들을 만나고 퇴근시간 이후에 일이 시작되는 편이라 강한 체력이 필요하다. ‘어떻게 하면 남과 다른 기획을 할까’ 고민하다 자칫 강박이 생길 수 있다. 그리고 생각보다 기획자에 대한 처우가 좋지 않다.”
▶남보다 진로를 빨리 정한 편인 것 같다. 요즘 진로를 정하지 못하고 막연히 취업 준비에 몰두하는 학생들이 많은데 조언한다면.
“조언할 위치는 아니지만 요즘 후배들을 보면 안쓰럽다. 대학이 대학답게 깊이 있는 학문을 가르치지 못한다. 나 때도 그랬다. 번역서를 수입해 오면 한국의 풍토에 맞게 내재화하지 못하니 학문의 필요성을 못 느끼는 학생들이 많은 것 같다. 외워서 학점 따는 것밖에 안 된다.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지나치게 스스로를 차별화할 필요는 없지만,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강점의 기반에서 자기만의 도구를 찾으라는 거다. 자신의 전공 내에서 계기를 발견하면 더없이 좋을 것 같다. 지금 시대에서 요구하는 인재는 탁월한 무언가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의사소통 능력이 뛰어난 친구들이다. 기업과 사회에 공감력이 뛰어난 친구들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대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그들의 삶을 잘 모르기 때문에 조심스럽고, 내가 살던 시절과 또 다를 거라고 생각한다. 나 때도 경쟁이 심했다. 대학 입시를 끝내고 경쟁이 싫어서 피해 다녔던 것 같다. 남들이 다하는 걸 안 하긴 어렵다. 하지만 경쟁을 피하는 법을 배웠으면 좋겠다. 꼭 대기업만 정답이 아니고, 당장 연봉을 가지고 주눅들 필요가 없다. 이미 여러분의 삶 자체가 멋지게 기획된 생(生)이다. 오래 지속할 수 있는 나다운 걸 찾아야 30대, 40대, 50대에 멋진 자기 인생을 살 수 있다.”
잡앤조이=이진이 기자 zinysoul@hankyung.com
대학에서 언어학을 전공한 그는 “언어학과에 다닌다”라고 하면 “어느 학과?”라고 되묻는 이들이 많았다고 회상했다. ‘언어’를 ‘어느(which)’로 알아듣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기호학과 철학을 공부한 게 아까워 전공을 살려야겠다는 생각에 언어학 전공자를 뽑는 곳만 찾아다녔다.
1년간 신문기자로 일하다가 브랜드컨설팅 회사로 자리를 옮겨 네이미스트로 일했다. 이후 브랜드 전략, 디자인, 인테리어, 커뮤니케이션, 브랜드 매니지먼트 등 다양한 업무를 맡고 수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에 올랐다. 자타가 공인하는 ‘워커홀릭’이었던 탓에 공황장애를 겪기도 했지만 여전히 일하는 게 즐겁다고 말한다.
그는 ‘공동체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해 더 멋진 기획자들이 많아져야 한다고 믿는다. 공익 브랜드 커뮤니티 ‘매아리(매일 부르고 싶은 아름다운 이름)’를 기획하고, 디자이너, 전략가, 네이머, 철학자를 한데 모아 브랜드를 연구하고 고민하는 연구 공동체 엘레멘트컴퍼니를 설립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학창시절 어떤 학생이었나.
“고등학교 때까지 모범생이었다. 너무 가난해서 공부 외에 다른 길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원래 서울대 종교학과에 진학하고 싶었는데, 떨어졌다. 비슷한 과를 찾다 보니 인류학과 언어학이 있었다. 성적에 맞춰 언어학과에 진학했는데 정말 재밌게 공부했다. 교과서에서 배우던 지식들의 잘못된 점도 배우고 노동에 대한 관점들, 어떤 포지션을 취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해석할 수 있고 다른 프레임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1학년 때 알게 됐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
“학창시절엔 사회과학학회와 인문고전강독학회 활동만 했다. 학회에서 번역되지 않은 원서를 읽고 토론했다. 어떤 날은 뒤풀이에서 새벽 4시까지 술을 마시면서 계속 토론했다. 예를 들면 존재, 존재자에 대한 개념의 차이와 쓰임새에 대해 형들이 가르쳐 주면 테이블 아래 수첩을 두고 필기하면서 술을 마셨다. 당시에는 실용적인 공부를 하는 것을 싫어했다. 그럴 필요는 없었는데.”
▶주관이 뚜렷했던 것 같다.
“어른들이 보기에 철딱서니 없는 행동들을 많이 했다. 과외를 했으면 등록금도 어렵지 않게 벌었을 텐데 돈을 수월하게 버는 방식을 경멸했다. 편의점에서 하루 11시간 일하고 1만3000원을 받았다. 바코드도 없던 편의점이어서 가게에 있는 물건 가격을 일일이 외웠다. 당시 인기 있던 주스 가격이 3200원이었는데, 가격을 착각해 2400원에 팔았다. 희한하게 많이 팔렸다. 월급에서 다 까였다. 밤 11시부터 오전 10시까지 일하니 졸다가 도둑도 많이 맞았다. 당연히 월급에서 까였다. 그땐 어려운 길만 골라서 갔던 것 같다.”
▶신문기자로 일한 이력이 독특하다.
“취업에 대한 생각도 없었고 스펙이나 영어 성적도 없었다. 그러다가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이 돼서 3년 4개월간 공군 장교로 복무했다. 돈을 모아서 유학을 떠날 생각이었는데, 갑작스레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취업을 해야만 했다. 글쓰기는 자신 있었던 터라 신문사 취업을 생각하게 됐다. 교수신문은 학부 때부터 즐겨보던 신문이었다. 교수, 연구자들의 표절을 취재하고 표절에 대한 윤리를 만들어가는 일이었고, 작은 신문사였지만 표절 기사가 학계에 미치는 영향이 컸다. 2006년에는 KBS <추적 60분>에서 공동 작업 제의가 들어와 대한민국 교수들의 표절이라는 연구 부정행위를 함께 취재하기도 했다.”
▶이후에 기획자로 전향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전공을 살리고 싶은데 채용의 기회가 많지 않았다. 한 브랜드 전략 회사에서 언어학 전공자를 뽑는다고 해서 네이미스트로 일을 시작했다.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일이어서 좋았고, 잘할 수 있는 일이어서 계속하게 됐다. 이름을 설득하기 위해 경영학, 마케팅, 심리학도 공부했다. 시장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이름을 설득하니까 자연스럽게 브랜드 전략도 하게 됐고, 프로젝트도 맡게 됐다. 브랜드에 다양한 요소가 있다. 네이밍, 슬로건, 카피라이팅, 디자인, 인테리어 등을 하는 걸 크리에이티브라고 하는데, 이를 디렉팅하는 역할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다. 어느새 이 자리까지 오게 됐다.”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는 무엇인가.
“인천공항 내부 서비스 철학을 만드는 작업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2011년 당시 인천공항은 세계공항서비스평가(ASQ) 1위를 수년째 기록하고 있었다. 해외 여러 공항에서 인천공항의 서비스를 배우기 위해 찾아왔지만, 인천공항 스스로도 무엇이 차별화됐는지 알지 못했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서비스 정신을 태조 왕건 때부터 내려오는 설화에서 찾았다. 급하게 마시면 체할까봐 바가지 물에 버드나무 잎을 띄워놓는 것에서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 그 태도를 ‘마음씀’이라고 정의했다. 또한 이탈리아 럭셔리 브랜드 구찌의 ‘구찌 카페’ 팝업스토어 인테리어 시공을 맡은 것도 새로운 도전이었다.”
▶재능기부 활동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동료들과 함께 만든 비영리 공익 브랜드 커뮤니티인 ‘매아리’는 2009년 9월 9일에 시작됐다. 가장 최근에는 서울시 환경 캠페인 프로젝트를 진행해 NHK에 소개되기도 했다. 쓰레기 무단투기 방지를 목적으로 쓰레기 먹는 먹깨비 비닐봉지를 만들었다. 환경미화라는 계몽적인 메시지 대신 위트 있는 캐릭터를 만들어 시민들이 즐겁게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해외에서 진행한 한글 캠페인도 기억에 남는다. 데릭이라는 청년이 한글 캠페인을 도와달라고 페이스북으로 연락해 왔다. 캐나다 브리티시 콜롬비아주 정부 관할에서 한글 캠페인을 한 달간 진행한 뒤 10월 9일한글날이 그 지역 공식 기념일로 선포되는 성과를 냈다.”
▶일하면서 힘든 순간도 많았을 것 같다.
“프로젝트 강도도 세고, 완벽주의자 기질이 있어서 일을 마무리하고도 마감 전에 좋은 생각이 떠오르면 계속 수정하는 편이다. 하루 수면시간이 3시간을 넘지 않을 때가 1년 넘게 지속되니 공황장애가 왔다. 4개월 정도 일을 쉬면서 내려놓는 연습을 했다. 지금도 잠을 잘 못 잔다.”
▶기획자에게 필요한 역량은 무엇인가.
“호기심을 갖고 이것저것 기웃거리는 태도와 엉덩이가 무거워야 한다. 관심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일정한 프레임으로 정리하고 도큐멘테이션 할 수 있어야 한다. 기획을 사람들에게 알리려면 여전히 문서가 가장 좋은 방법이다. 세계에 대한 애정, 그것을 잘 기록하고 공유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기획자의 장점과 단점을 꼽는다면.
“장점은 기업에서 새로운 것을 시작할 때 남보다 빨리 알게 되는 것이다. 반면 각박하다. 일과 중에 사람들을 만나고 퇴근시간 이후에 일이 시작되는 편이라 강한 체력이 필요하다. ‘어떻게 하면 남과 다른 기획을 할까’ 고민하다 자칫 강박이 생길 수 있다. 그리고 생각보다 기획자에 대한 처우가 좋지 않다.”
▶남보다 진로를 빨리 정한 편인 것 같다. 요즘 진로를 정하지 못하고 막연히 취업 준비에 몰두하는 학생들이 많은데 조언한다면.
“조언할 위치는 아니지만 요즘 후배들을 보면 안쓰럽다. 대학이 대학답게 깊이 있는 학문을 가르치지 못한다. 나 때도 그랬다. 번역서를 수입해 오면 한국의 풍토에 맞게 내재화하지 못하니 학문의 필요성을 못 느끼는 학생들이 많은 것 같다. 외워서 학점 따는 것밖에 안 된다.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지나치게 스스로를 차별화할 필요는 없지만,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강점의 기반에서 자기만의 도구를 찾으라는 거다. 자신의 전공 내에서 계기를 발견하면 더없이 좋을 것 같다. 지금 시대에서 요구하는 인재는 탁월한 무언가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의사소통 능력이 뛰어난 친구들이다. 기업과 사회에 공감력이 뛰어난 친구들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대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그들의 삶을 잘 모르기 때문에 조심스럽고, 내가 살던 시절과 또 다를 거라고 생각한다. 나 때도 경쟁이 심했다. 대학 입시를 끝내고 경쟁이 싫어서 피해 다녔던 것 같다. 남들이 다하는 걸 안 하긴 어렵다. 하지만 경쟁을 피하는 법을 배웠으면 좋겠다. 꼭 대기업만 정답이 아니고, 당장 연봉을 가지고 주눅들 필요가 없다. 이미 여러분의 삶 자체가 멋지게 기획된 생(生)이다. 오래 지속할 수 있는 나다운 걸 찾아야 30대, 40대, 50대에 멋진 자기 인생을 살 수 있다.”
잡앤조이=이진이 기자 zinysoul@hankyung.com